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첫 논문도 학부시절 졸업 논문이다.
그것은 신채호의 <일목대왕의 철퇴> 작품론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졸업 논문을 대체하는 이런저런 제도가 달리 생겨나던 때라서,
그냥 학과 사무실에 제출만 했고, 지도교수 도장도 어떤 것을 찍었던가 모르겠다.
그냥 조교 형님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찍으셨던 것도 같다.
그 작품론은 소설 속 일목대왕 궁예가 신채호의 자기 반성적 자화상이었다는 주제였고,
그런 신채호에게서 나는 향가를 전공하리라 결심했던 자신의 비애를 약간 겹쳐 보았다.
절대로 신채호처럼 독립운동을 하거나 사명감으로 한국학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주 약간은 그 슬픔의 끝자락이라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 뒤로는 대개 향가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고전문학에 관한 글들을 쭉 써 왔다.
어쩌다가 최남선에 관한 글은 쓰더라도, 신채호는 애써 피했다.
처음 쓴 글로 다시 돌아오기란, 더 원숙하고 다른 말로는 늙어서야 할 법한 일이라 생각해서이다.
그런 나의 계획과는 상관 없이, 그냥 누군가의 분부에 따라 오늘
24년 만에 첫 논문의 주제로 학회 발표를 하였다.
더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했어야 했는데, 바쁘고 지쳤다고 형편없이 썼다.
형편 핑계를 댔지만 아마 이 정도가 딱 지금 내 수준일 것이다.
15년 전에 박사 논문은 쓰던 무렵 향가의 세상을 돌아다니는 꿈을 꾸곤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신채호의 꿈이기도 했고, 우리 함께 상상한 고대 한국의 판타지였다.
그때처럼 절박하게 공부하지는 않아서인가, 그 꿈을 꾼 지도 너무 오래다.
24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꼭 두 마디만 해 주고 싶어진다.
24년 후의 나도 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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