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고향

不岳 2012. 9. 25. 17:01

몇 가지 이유로 나는 고향 땅 밟기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고향 땅에서 잠들기가 싫은 건데,

잠들고나서 다시 깨고 싶지 않았던, 깨지 않기를 바랐던 그 시절

나의 기억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다.

 

세월도 흐르고 어느 정도 버젓이 자리도 잡혔지만

아직도 고향에 간다는 건 썩 달갑지 않다.

그러니 꿈에 고향을 봐도 돌아간 혈육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만큼 찝찝해진다.

 

그래서 처음 전임이 되어 마산 땅을 갔을 때,

여기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 여기가 내 가족의 고향이 될 테니까

마산을 고향 삼아 살자는 좀 유치한 생각도 했다.

고작 2년 살고 떠날 사람이... 아무튼 그땐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내게 가정이 생길 낌새는 없다.

 

고작 2년이었지만 마산에서 만나고 겪은 이들은

내가 잃고 살아야했던 고향의 정을 되돌려 주었다.

그 정에 채 답하지 못하고 떠났는데도, 아직도 가끔 꿈결에서

월영지의 그 벚꽃은 복실복실한 이불이 되어 나를 덮어준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나는 떠났다.

대단한 학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 훌륭한 박사들을 키우려고?

나중에 알량한 미련을 안 가지려고?

어떻게 변명해도 아직은 그저 부족하다.

아직은 그저...

 

고향은 떠나야 제맛이라는 말밖엔 못하겠다.

나중에 더 늙고 늙으면 좀 그럴싸한 이유를 댈 수 있으려나...